분해를 거부하는 리사이클, ‘Dip series’
대부분의 리사이클은 사물을 해체하고, 재료 단위로 분해한 뒤 과거의 흔적을 지운 채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Dip series’는 전혀 다른 방향을 택한다.


사물은 시간이 지나면 낡는다. 기능은 약해지고, 형태는 변형된다. 그래서 우리는 물건을 버리거나 새로운 것으로 대체한다. 대부분의 리사이클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물을 해체하고, 재료 단위로 분해한 뒤 과거의 흔적을 지운 채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Dip series’는 전혀 다른 방향을 택한다. 사물을 분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사용의 흔적, 즉 ‘기억’을 그대로 보존한다. ‘Casting Memory’라는 개념을 통해 레진을 사물 위에 응고시키고, 그 위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한다. 기억을 삭제하는 대신 보존한 채 재구성하는 새로운 방식의 재활용이다.



특히 ‘Dip series – My Studio’는 이러한 접근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시리즈다. 디자이너의 실제 작업실에서 사용되던 물건들이 레진과 결합하며 새로운 오브제로 전환된다. 오래된 컴퓨터는 의자의 등받이로 기능하고, 책상 아래에 놓여 있던 수납함과 케이블, 책, 플러그는 뒤엉킨 상태 그대로 굳어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 거울은 더 이상 반사 도구가 아닌 벽면의 조형물이 되고, 카트의 바퀴는 로우 테이블을 지지하는 요소로 재배치된다. 각각의 사물은 새로운 기능을 가지게 되지만, 이전에 가지고 있던 흔적을 완전히 잃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뒤틀림과 번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레진으로 캐스팅되는 동안 발생하는 수작업의 흔적은 기억이 지닌 불완전성을 드러낸다. 어떤 부분은 선명하게 남고, 어떤 부분은 흐릿하게 번지며, 형태는 정확하게 고정되지 않는다. 이는 기억이 언제나 왜곡되고 재해석된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