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지은 찰나의 집, 소백 팝업
종이로 짓고, 종이로 사라지는 집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찰나의 집이 세워졌다. 신-한국적 미니멀리즘 브랜드 소백의 팝업 매장. 화려한 등장 이면에 수 톤의 폐기물을 남기는 임시 공간에서 소백은 종이를 택했다.

매일 수많은 브랜드의 팝업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 사이 공간을 채웠던 구조물은 해체되고 수 톤의 산업 폐기물이 남는다. 목공 합판, 시트지, 조명 프레임. 며칠간의 화려함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단 하루 만에 잔해가 된다. 백화점 팝업이 일상이 된 시대에 그 이면의 풍경은 좀처럼 회자되지 않는다. 이 같은 상업 공간의 고질적 문제에 질문을 던지며, 백화점 한복판에 ‘종이’로 집을 지은 브랜드가 있다.

신-한국적 미니멀리즘 브랜드 소백(So_back)의 팝업이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열리고 있다. 40평 규모의 메인 팝업 자리에 디자이너 박민아가 브랜드를 오래 애정 해온 팬들과 함께 허니콤보드로 지은 하얀 집이 서 있다. 외부 시공 업체 없이, 밤새 그들 손으로 만든 집이다.

초록 기둥, 물, 하얀 집

팝업 공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초록 대리석 기둥이다. 이전에 입점했던 브랜드마다 어떻게든 가리려 했다는 기둥. 박민아 디자이너는 오히려 공간의 중심 요소로 끌어안았다. 자연에서 온 대리석, 그리고 초록이라는 색에 집중해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기둥을 덮는 대신 그 표면에 소백의 심볼만 단순하게 부착했다. 마치 브랜드가 처음부터 이 기둥을 세운 듯한 인상을 준다.

바닥에는 하이글로시 소재가 깔려 상부가 물처럼 반사된다. 소백의 도자 제품 중 유광 백색 유약을 입힌 ‘부석 플레이트(Water White)’에서 영감을 얻었다. 완전히 반사되는 물의 색이 곧 백색이라는 해석이 바닥 연출로 이어졌다. 그 위에 허니콤 보드로 지은 하얀 집이 올라간다. 소백산의 숲을 닮은 초록 기둥, 물을 담은 바닥, 그 위의 하얀 집. 백화점이라는 인공적인 공간 안에 소백 고유의 자연 서사가 한 겹씩 쌓인다. 잠깐의 꿈처럼 빛나는 물 위에 유영하는 비현실적인 종이집.

허니콤보드로 완성된 기둥 형태의 행거에는 단면의 벌집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현장에 방문한 고객은 이를 의도된 격자 패턴으로 인지하기도 한다. 소재의 구조적 특성이 미감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철거 시에는 100% 종이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전체를 백색으로 통일해 멀리서도 새하얀 공간이 보이게 하고, 가까이 다가오면 비현실적인 감각을 느끼게 한다. 종이 소재와 반사되는 바닥이 만드는 ‘기한 임박’의 감각. 임시 매장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냄으로써 지금 들어와야 한다는 긴장감을 만들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소백이 세운 하얀 집은 3월 8일까지 이어진다. 종이 집이 사라지기 전, 투박하지만 따듯한 손맛의 온기를 직접 확인해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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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아 소백 대표·디자이너

외부 업체 없이 팬들과 직접 시공하셨다고요. 실제로 어떤 분들이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소백을 오랫동안 애정해주고 실제로 많은 소비까지 한 고객을 저는 ‘성골’이라 불러요. 실제 성골들이 모여 만든 팝업입니다. 제가 진행하는 독서모임까지도 몇 해째 같이 하고 있기도 하고요. 대부분 디자인 전공자이거나 종사자들이에요. 언젠가 자기 브랜드를 갖는 것이 꿈인 친구들이 많죠. 백화점 팝업 셋팅이 실무에서 쉽게 겪기 어려운 일이잖아요. 먼저 함께 만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줘서 실전 워크숍처럼 함께하게 됐어요.


기성 브랜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접근법이기도 합니다. 왜 이런 방식을 택했나요?
팝업 공간에서 완벽한 마감을 추구하지 않아요. 한국의 미학을 중국, 일본과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얼기설기’의 미학을 첫 번째로 꼽는데요.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거든요. 완성도보다 만드는 과정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밤중에 계획대로 안 맞는 부분이 나와도 새로 재료를 사올 수 없잖아요. 어떻게든 현장에서 해결을 봐야 하죠.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합의점을 찾아가며 완성했어요. 힘들었지만 그래서 더 즐거웠던 기억이에요.

지난 더현대서울 부티크 매장을 택배 박스로 만드셨고 이번에는 허니콤보드를 선택하셨죠. 택배 박스부터 허니콤보드까지 종이 소재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팝업은 설치도 일이지만 철거도 큰일이에요. 종이로 모두 재활용 처리가 가능하니 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다른 브랜드의 일을 하면서 수 톤 트럭으로 실려 나가는 폐기물을 볼 때 양심적으로 가책을 느껴왔거든요. 일시적으로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감안한 소재의 선택, 그것을 팝업의 콘셉트로 풀어내는 디자인. 이런 걸 고민하는 것이 브랜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자 미래를 생각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가장 팝업다운 형태란 무엇인가요?
팝업은 잠깐 있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잖아요. 정식 매장이 아니기에 오히려 실험적으로 도전해 볼 수 있죠. 브랜드의 일관된 아이덴티티는 필요하지만, 기간과 공간이 한정적인 만큼 그 시점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단 하나로 압축되어 뾰족하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공간의 형태나 협업이 있나요?
3월 도쿄 츠타야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에서 팝업을 해요. 거길 시작으로 LA, 파리 등 각 현지에 있는 편집숍과 협업을 논의 중입니다. 그곳에 또 하얀 소백의 집을 지을 예정에요. 하나의 콘셉트로 여러 나라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전시 같이요. 소백의 집이 어떤 소재와 형태가 될지는 공간마다 다를 겁니다. 변주를 주는 게 정말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